2002. 2. 『任允摯堂의 生涯와 思想』, 원주문화원


임윤지당(任允摯堂)의 경학 사상

- 「중용경의(中庸經義)」를 중심으로 -


김   현*1)


1. 윤지당(允摯堂)의 학문 배경

2. 윤지당의 「중용경의(中庸經義)」

3. 「중용경의」의 특징

4. 윤지당 경학의 의의


1. 윤지당(允摯堂)의 학문 배경


  여성의 역할이 가사와 생산 노동에 국한되었던 조선시대에 윤지당 임씨(任允摯堂, 1721-1793)와 같이 학문적 업적을 남긴 여성 학자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윤지당은 그 시대의 여느 사대부가 여인처럼 젊었을 때 시집을 가 평생 한 집안의 주부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남자들처럼 입신을 위한 목적에서 문장을 연마한다거나 누구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수련하는 등의 경험을 쌓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총명한 자질을 드러내어 가족들의 귀여움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형제들로부터 학문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윤지당의 부친 노은(老隱) 임적(任適, 1685-1728)은 도암(陶庵) 이재(李縡, 1680-1746), 수암(遂庵) 권상하 (權尙夏, 1641-1721)등과 교유한 학인이었으나 윤지당이 8살 때에 돌아갔으니, 윤지당이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윤지당의 형제들은  부친이 안 계신 가운데에도 가정의 의례를 엄격히 하여 가풍을 보존하며, 형이 아우의 학문을 훈도하는 등 학문 연구에도 진력하는데.1) 이때 윤지당은 둘째 오빠인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에게서 경사(經史)의 지식을 익혔다. 여자이긴 하였으나 영민하였던 그에게 가족들은 학문을 가르치거나 의례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을 즐거이 여겼던 듯하다.2)

  윤지당은 19세(1739)에 원주 지방의 신씨 집안에 출가하였으나 8년만에 남편이 죽어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되었다. 그의 남편 신광유(申光裕)는 큰아버지 댁의 양자로 들어갔었기 때문에 그는 생가와 양가의 두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고, 또 그 자신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친동생 신광우(申光祐)의 자식을 양자로 들였다. 이로 인해 윤지당은 남은 생애를 시동생 집에서 보냈는데,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그의 지위에 어긋남이 없는 품행을 보여 가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친정에서 학문을 익혀오긴 했어도 시집간 후에는 여자가 학문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했는지 일체 책이나 문자를 가까이 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다가 노년에 이르러 조심스럽게 독서와 저술을 다시 시작하였다. 평소에 그를 극진히 섬겼던 시동생조차 노년에 이르러 밤중에 윤지당의 방에 불이 켜 있고 낮은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을 목도한 연후에야 그가 은밀히 학문에 뜻을 두어 왔음을 알았다고 한다.3)

  윤지당은 어렸을 때 부친을 여의었으며, 시집간 지 10년도 못돼 과부가 되었고  자식도 없었으며 양자마저도 자기보다 일찍 죽었으니 지극히 박명한 여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환경이 그로 하여금 이른바 삼종(三從)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문을 접할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윤지당의 「중용경의(中庸經義)」


  윤지당은 노년에 자신의 저작을 책으로 간행할 의지를 가지고 평시에 써 둔 글을 정리해 두었고 이 가운데 35편이 그의 사후에 친동생 임정주와 시동생 신광우에 의해 간행된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에 수록되었다. 그 중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 이른바 ‘경학 사상(經學思想)’을 엿볼 수 있는 글은 「대학경의(大學經義)」와 「중용경의(中庸經義)」 두 편의 글이다.  이 가운데 「대학경의」는  불과 6 조의 짤막한 저술인데 반해 「중용경의」는 그의 저술 가운데 본격적인 성리학 논문인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분량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용』의 경문에 단편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전체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저술된 것이다.

  「중용경의」는 윤지당의 나이 65세 때(1786)에 정리된 글이니 그의 만년의 저작인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후기(後記)에도 기술하였듯이 그는 젊었을 때부터 『중용(中庸)』을 읽으면서 경문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주관을 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윤지당은 오빠 임성주 및 동생 임정주(任靖周, 雲湖 1727-1796)와 서간을 주고받으면서 전통적인 해석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나 자신의 독창적인 의견에 대해 질정하면서 거기서 얻어진 내용을 가지고 경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심화시켜 왔다. 이 점에서도 윤지당의 「중용경의」는 초학자의 학습 노트 수준의 기록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의 연구와 사색에 의해 만들어진 심도 있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윤지당의 「중용경의」 속에서 전통적인 주자성리학의 『중용』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는 돌출하는 의견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 윤지당이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을 갖지 않고 전통적인 해석을 무조건 묵수하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윤지당이 오빠 녹문과의 서신에서 주고받은 문답만 보아도 그가 경문의 모든 구절을 깊게 분석하였으며 심지어는 주자의 해석에 대해서도 의심을 갖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태도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4)

  윤지당의 「중용경의」는 『중용』 각 장의 주요 구절에 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거나, 연속된 여러 장의 대의를 요약 설명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윤지당이 『중용』의 어느 부분을 특별히 의미있게 보았으며, 경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어떠한 방향으로 파악하였는지 알기 위해 「중용경의」의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5)


○ 제1장


<경문>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도(道)의 근본은 하늘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 도를 닦는 것은 내 본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좇을 뿐, 머리를 쓰고 법제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문>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주제> 不睹․不聞과 隱․微의 차이는?

<요지>‘其所不睹’와 ‘其所不聞’은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듣지 못하는 것(己所不睹, 己所不聞)을 말함이니, 사려가 발동하기 이전 고요한 성(性)의 본체[體]를 말하는 것이며, ‘隱’과 ‘微’는 마음[心]의 작용[用]이 시작되는 기미[幾], 즉 남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는 사려의 첫 발동을 말하는 것이다.


<경문>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중(中)은 하늘이 내린 성(性)으로 도의 본체[體]이며 화(和)는 성을 따르는 도이니 성의 작용[用]이다. 도의 본체를 치우치지 않게 확립하면 거기에서 발현하는 것이 모두 바르게 된다. 배워서 이 경지 이르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이루는 것이니 성인이라도 더할 것이 없다.


○ 제6장 - 제10장


<주제> 6장에서 10장 사이에 여러 번 지(知)․인(仁)․용(勇)의 일을 인용한 이유는?

<요지> 이 세 가지 덕을 가져야만 도에 들어갈 수 있다. 인(仁)은 그 자체가 바로 중용의 덕이다. 그러나 먼저 이치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며, 나중에 중도포기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인(仁)의 앞뒤에 지(知)와 용(勇)을 둔 것이다.


○ 제11장


<경문> 君子遵道而行, 半塗而廢, 吾弗能已矣.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주제> 군자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요지> ‘도를 따라 행하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遵道而行, 半塗而廢]은 그저 ‘착한 사람’[善人]이라는 뜻에서 군자라고 한 것이며, ‘중용에 의지하며 세상을 피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는 군자 중에서도 지혜와 수양이 극진한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후자의 길을 택하도록 하는 것이 공자의 의도였다.


○ 제12장


<경문> 君子之道, 費而隱.

<주제> 비(費)․은(隱)의 뜻은?

<요지> 도의 본체는 오묘하여서 추측할 수 없지만, 그것이 천지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솔개의 비상(飛翔)과 물고기의 약동(躍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의 본체와 작용은 위․아래에서 밝게 드러나 그것이 어디에나 있음을 보고 알 수 있다.  은밀하다[隱]고 한 것은 도가 유행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되는 본체에 대해서 한 말이며, 크다[費]고 한 것은 그 도에서 떠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 제13장


<경문>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주제> 공자께서 스스로 “능하지 못하다”고 하신 이유

<요지> 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는 무궁하지만 자기는 부족함’을 항상 알아야 한다. 공자께서는 그러한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 제14장


<경문>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군자가 보존하는 것은 도이며,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마음쓰고 노력한다. 따라서 궁달(窮達)․빈부(貧富)․영욕(榮辱)․득실(得失) 등 외적인 것에 대해서는 어느 것을 당하든 자연스럽게 대처할 뿐,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 제16장


<경문>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주제> 경문에서 말하는 귀신(鬼神)은 기(氣)인가, 이(理)인가?

<요지> 귀신의 개념은 전적으로 기(氣)에 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이(理)와 합일된 것을 말한다.  주자는 ‘사물의 본체가 되어 빠뜨림이 없음’[體物而不可遺]를 ‘도의 광대함’[費]으로 해석하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을 ‘도의 은밀함’[隱]으로 해석하였다. 귀신은 본래 기(氣)이지만,  크고 은밀한 것[費․隱]은 이(理)를 말한다. 귀신(鬼神)과 도(道, 費․隱)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 제17장


<경문> 故大德者必受命.

<주제> 큰 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천명을 받는다고 했는데, 공자가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요지> 공자가 요․순에 비해 덕이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공자의 시대에는 천운(天運)이 매우 쇠하여 천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제20장


<경문>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주제> 수양의 방법

<요지> 자신의 근본은 하늘에 있으니, 하늘은 바로 이(理)일 뿐이다. 이 이(理)를 알아 자기 안에 보존하는 것을 수신(修身)이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늘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배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누구나 배움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경문>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 所以行之者, 一也.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오륜(五倫: 君臣, 父子, 夫婦, 昆弟, 朋友)은 천하 사람들이 함께 가야 할 길이므로 달도(達道)라고 한 것이다. 이 달도를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지(知)․인(仁)․용(勇) 세 가지 덕이다. 이 세 가지 덕은 성실함[誠]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세 달덕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즉 성실[誠]이라고 한 것이다.


○ 제21장

<경문>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힘쓰지 않고도 행할 수 있어 천성에 따라 명철하게 비추지 않는 바가 없는 경우, 이를 일컬어 ‘성실로부터 명철에 이르는 것을 성품이라 한다’[自誠明, 謂之性]고 하는 것이며, 배워서 알고 노력하여 행해야 하므로 가르침에 따라 선을 택하고 성품을 회복하는 것을 일컬어 ‘명철로부터 성실에 이르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自明誠, 謂之敎]고 한 것이다. 이는 바로 성인과 현인의 다른 점이지만 그 공을 이루는 것은 똑같다.


○ 제22장


<경문> 惟天下至誠 ..... 可以與天地參矣.

<주제> 성품의 차이와 성인의 은덕

<요지> 사물과 사람, 범인과 성인은 품부받은 기질(氣質)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성인께서 (기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본래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직분을 행해야 함을 알게 하고 그 준칙을 정함으로써 천․지․인의 삼재(參才)로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성인의 큰 은혜이다.


○ 제23장


<경문> 其次, 致曲. 曲能有誠.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일반 사람은 선한 본성의 어느 한 측면만 치우쳐 발현하게 된다[曲]. 이 하나 하나에 공을 들여 확충시켜서[致曲] 그 궁극에까지 이르면 성인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 제25장


<경문> 誠者, 自成也; 而道, 自道也.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성실[誠]은 사물이 자신을 이루어 내는 원리이며[物之所以自成], 도(道)는 사물이 스스로 실천하는 길[物之所以自行]이다.


<경문>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성실[誠]이란 진실하여 망령되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하늘에 있는 것을 실리(實理)라고 하고, 사람에게 있는 것을 실심(實心)이라고 한다. 이(理)로써 말하면 만물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이 이(理)가 하는 바이며, 심(心)으로써 말하면 만사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이 심(心)이 하는 바이다. 그래서 성실[誠實]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 된다고 한 것이다.


<경문> 誠者, 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성실[誠]은 비록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것이지만 남과 나 사이에 간격이 없으므로 자기를 이루고 나면 이를 미루어 남을 이루게 해야 한다.


○ 제27장


<경문> 苟不至德, 至道不凝焉.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주제> 덕으로 들어가는 방법

<요지> ‘덕성을 높이는 것’[尊德性]은 본성을 함양하여 사사로움을 막고 성실[誠]을 보존하는 것이며, ‘학문을 실천하는 것’[道問學]은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며 세밀하게 살피고 밝게 변별하는 것이다. 전자는 마음을 보존하는 것[存心]으로 큰 덕을 닦아 도체의 큰 것을 모아 이루는 것이며, 후자는 지식을 밝히는 것[致知]으로 작은 덕을 닦아 도체의 미세한 것을 모아 이루는 것이다. 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은 진실로 여기에 힘을 기울여 깨뜨리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면 도를 실현할 수 있으며, 성인을 따를 수 있게 된다.


○ 제29장 - 제32장


<요지> 이 장은 성인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간다는 뜻을 극도로 칭송한 것이다.


○ 제33장

<경문> 詩曰: 衣錦尙絅. /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 /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주제> 경문의 의미

<요지> 나의 고유한 성품을 수양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남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있을 때 더욱 조심하며, 사려가 싹트기 전에도 반드시 경계하고 조심하여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배우는 사람들이 고원하고 현묘한 것에 매달려 덕으로 나아갈 기초를 닦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스스로를 위한 수행과 자신을 성실히 하는 요점을 거듭 제시함으로써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노력할 방법을 알게 한 것이다.


○ 총론

 『중용』 한 책의 뜻은 모두 ‘도에서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중용의 도는 ‘진실하여 망령되지 않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요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성실로써 근본을 삼아 독실하고 공손한 데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천하가 태평하게 되는 성대함을 이루는 데 있다.



3. 「중용경의」의 특징


  1) 왜 『중용』인가?


  윤지당의 『중용』 해설의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기 전에 왜 그는 유학의 여러 경전 중에서 유독 『중용』이라고 하는 책에 대해 장문의 경의를 저술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용』의 경문은 우주와 인간, 개인과 사회를 관통하는 원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이 책에 대한 주자의 주석서 『중용장구(中庸章句)』나 『중용혹문(中庸或問』에는 성리학 이론의 골간을 이루는 명제들이 산재하므로 이 경에 대한 성리학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윤지당의 경우 전문적인 학자로서의 생애를 보낸 사람이 아닌데 어떠한 계기에서 유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사변적(思辨的)이라고 할 『중용』에 대해 이렇듯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이에 관해서는 윤지당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평생 그에 대한 스승의 역할을 해온 그의 오빠 녹문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용』은 바로 녹문의 고유한 학문과 사상을 있게 한 산파의 역할을 한 책이었다. 녹문은 젊은 시절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 등 그와 가깝게 지내던 동학들과 『중용』에 대해 활발히 토의를 하기도 하였고 혼자서 『중용』을 들고 산 속에 들어가 50일간 은거하면서 자신의 『중용』 해설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중용』의 내용 중에서 특히 녹문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부분은 제16장의 귀신의 덕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녹문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理)와 기(氣)가 합일되어 영명하고 활발한 도체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하였다.6) 녹문의 평생의 학문이 이기동실(理氣同實)의 도체(道體)와 심성일치(心性一致)의 심체(心體)를 해명하고 활발한 도체의 유행을 삶 가운데 체현하는 데 집중된 것인 만큼, 그러한 철학 이론의 토대를 제공한 『중용』이 녹문의 학문에서 갖는 비중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보면, 녹문에게서 학문을 전수 받은 윤지당이 유학의 경전 중에서 특히 『중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녹문이 『중용』을 통해 심화시킨 도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험이 윤지당의 『중용』 이해에서도 중요한 골자를 이룸을 예견하게 하는 것이다.


  2) 도체(道體)에 대한 자각


  윤지당의 「중용경의」 곳곳에는 피상적 또는 이론적 수준에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깊은 통찰과 자각으로서 받아들인 도체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윤지당은 『중용』의 모든 내용이 총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한 마디로  “도에서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7) 이는 『중용』이라는 책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지당 자신이 『중용』을 통해 자신이 어느 한 순간도 도에서 떠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제1장에서 윤지당은 “하늘이 명령한 것이 성이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그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라고 하는 경문의 해석에서 “도를 닦는 수양은 바로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좇는 것”임을 강조하고8) 이어서 “천명(天命)에서 교(敎)에 이르기까지 더하고 뺄 것이 없다”고 하는 정자(程子)의 말을 찬사와 더불어 인용하였다.9) 천리(天理)-인성(人性)-수양(修養)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한 가지 흐름인 것에 대한 그의 자각을 언표한 것이다.

  그는 또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不睹․不聞)과 ‘은밀하고 미세한 것’(隱․微)을 인간의 마음에 품부된 도체가 심지사려로 발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이것 역시 인간이 도에서부터 떠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한다. 부도(不睹)와 불문(不聞)을 자기 자신이 아직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단계 즉, 하늘에서 품부된 본성이 심지사려로 발출하기 이전인 미발(未發)의 상태로 이해하고10) 은(隱)과 미(微)는 자신은 지각할 수 있으나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는 이발(已發)의 초기 단계로 해석하였다.11) 홀로 있을 때 삼가는 신독의 수양을 전형적인 성리학의 수양법인 존양(存養)․성찰(省察)의 길로 이해한 것이다. 미발의 때에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본성을 보존하고, 이발의 때에 그것이 조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살피는 존양․성찰의 수양법은 성리학의 대표적 경(敬) 공부의 방법이지만, 윤지당이 계신공구(戒愼恐懼) 및 신독(愼獨)의 공부를 이처럼 곧바로 존양․성찰에 대입한 것은 그가 내 마음 속의 도체를 보존하는 것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중(中)․화(和)에 대한 해석에서 윤지당은 다시 중(中)은 하늘이 내린 성(性)으로 도의 본체이며, 이 도의 본체를 치우치지 않게 확립하면 거기에서 발현하는 것이 모두 바르게 되어[和]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됨을 확인하고 있다.12)

 『중용』의 제6장에서부터 제10장까지는 모두 도의 본체를 치우치지 않게 확립하는 데 필요한 덕목 세 가지 즉 지(知)․인(仁)․용(勇)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였다. 윤지당은 이 가운데 두 번째 덕목인 인(仁)은 그 자체가 바로 도의 본체를 치우치지 않게 확립하는 중용(中庸)의 덕이라고 본다.13) 그렇지만 이 중용의 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이치를 분명하게 밝히는 지혜[知]가 있어야 하고,14) 중용의 덕을 간직하게 된 후에는 그것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힘과 용기[勇]가 따라야 하기 때문에15) 인(仁)의 앞뒤에 지(知)와 용(勇)을 둔 것이라고 하였다.

  제12장의 “군자의 도는 크면서도 은밀하다”에 대한 해석 역시 자연과 인간을 관통하는 도의 본체는 감각할 수 없는 은밀한 것이지만 그것의 유행은 온 우주에 가득한 성대한 것임을 논함으로써 인간이 도에서 떠날 수 없음을 재론하였다.16)

  제16장의 귀신(鬼神)의 덕에 대해서는 윤지당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확실한 결론을 유보하고 후학들의 판단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중용』의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과감한 해석을 내린 그가 이처럼 조심스로운 태도로 접근한 문제는 선배 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도록 논란이 있어 온 주제인 ‘귀신을 이(理)로 해석할 것인가 기(氣)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신은 음양(陰陽) 이기(二氣)의 양능(良能)으로서 무형과 유형 사이를 오가는 기(氣)의 취산(聚散)의 중간적 단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점에서 귀신은 분명히 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른바 「귀신장(鬼神章)」으로 불리우는 『중용』 16장에서 주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은 도체의 은미함[隱]이며, 사물의 본체가 되어 (가까이) 있는 듯한 것은 도체의 광대함[費]이다.”17)라고 함으로서 도의 체용(體用)을 설명하는 비(費)․은(隱)이라는 개념을 귀신에 바로 연결지었다. 성리학의 이기이원론적(理氣二元論的)인 입장에서 도체는 곧 천리(天理) 즉 이(理)이지 기(氣)가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중용』의 귀신은 기(氣)냐 이(理)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선배 학자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윤지당은 무리하게 답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 점에 대해 뚜렷한 자기 의견이 없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귀신의 개념이 이(理)와 합일된 경우도 있다”든가,18) “귀신은 이(理)도 되고 기(氣)도 됨을 알 수 있다.”,19) “귀신과 비(費)․은(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20) 등의 언급은 귀신이라는 개념을 굳이 이(理)와 기(氣) 어느 한 쪽에 분속시킬 필요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귀신은 사실 은밀하면서도 성대한 도체의 유행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된 개념이다. 윤지당은 자연과 인간을 관통하는 그 일원적인 도체에 대한 자각이 중요할 뿐, 그것을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제20장의 수신(修身)과 천리(天理)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서는 윤지당의 학문의 또 하나의 과감한 면을 보게 된다. 윤지당은, “자신의 근본은 하늘에 있으니, 하늘은 바로 이(理)일 뿐이다.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늘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21) 『중용』경문이 원래 의미했던 것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어버이를 섬길 줄 알아야 하며, 어버이를 섬기기 위해서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 하며,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자연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경문의 천(天)을 주자가 이미 천리(天理)로 해석하기는 하였지만, 그 때의 천리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정립시키는 객관적인 사회 원리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22) 성리학에서 말하는 천리에 주관적인 원리와 객관적인 원리의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니, 주자의 해석과 윤지당의 해석이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자의 해석이 다분히 격물치지적(格物致知的)인 객관주의를 반영하는 반면, 윤지당의 해석은 자신에게 품부된 본성의 함양(涵養)에 바로 주력하는 주관주의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역시 천리-인성-수양을 꿰뚫는 일원적 도체에 대한 자각과 체현을 중시하는 윤지당의 학문 경향을 엿볼 수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수양의 공효에 대한 확신


  천리-인성-수양을 관통하는 도체에 대한 투철한 자각과 함께 윤지당의 『중용』 해석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주안점은 ‘인간은 누구나 노력에 의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제20장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성품이 요(堯)․순(舜)의 성품과 같다는 것을 알고 힘써 실천하면 그 성과는 태어나면서부터 천리를 알고 있는 성인과 동일한 경지라고 하였다.23) 이 배움의 실행은 구체적으로 오륜(五倫)의 실천이며,  그 실천을 가능케 하는 덕은 지(知)․인(仁)․용(勇) 용 세 가지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덕은 하나의 참된 이치[實理]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한 가지 이치는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성실[誠]이다.24)

  제21장의 내용은 태어나면서부터 진실무망(眞實無妄)한 성실[誠]을 이루어 저절로 지혜로울 수 있는 성인과 배움을 통해 지혜를 닦음으로써 성실에 이를 수 있게 되는 현인에 대한 비교이다. 윤지당은 이 장의 의미를, ‘성인과 현인 사이에 천성[性]과 수양[敎]의 차이가 있지만 그 공을 이룸은 한 가지’라는 의미로 이해한다.25)

  제22장과 제23장은 천리를 온전히 드러내는 성인[至誠]과 천리의 일부분만을 발현하는[曲] 현인 이하의 사람[其次]에 대한 비교이다. 이 중 전자는 ‘성인만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와 천․지․인 삼재(參才)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인데,  윤지당은 이 경문을 성인의 경지에 대한 설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가르침으로 인해 누구나 천․지․인 삼재(參才)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실한 가능성의 제시로 이해하고 그러한 길을 열어 준 공자에 대해 “크도다, 성인의 은혜여!”라는 찬사를 올리고 있다.26) 후자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이라 하더라도 치우쳐 발현하는 착한 단서를 하나 하나 좇아서 모아 가면 전체에 관통할 수 있고, 그 결과 귀신도 엿볼 수 없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27)

  제27장의 글은 윤지당이 자신의 저작을 간행하기 위해 정리를 마친 후에도 또 다시 문구를 수정하고 보완할 정도로 공을 들여 해석한 부분이다. 윤지당은 경문 중에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을 지목하면서 “모인다[凝]는 말에 가장 묘미가 있다”고 하였다.28) 모인다는 것은 작은 조각들이 여기저기 산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엉겨서 점점 더 크고 단단한 덩어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윤지당이 이 단어에 의미를 둔 것은 바로 배움을 통해 점점 더 완성된 경지로 커 가는 뜻을 새겼기 때문이다. 덕을 모으는 방법은 ‘덕성을 높이고 것[尊德性]과 학문을 실천하는 것[道問學]’이다. 존덕성(尊德性)은 내 마음에 본성으로 간직된 도체를 그 온전한 모습대로 보존하는 하는 함양(涵養) 공부이며,29) 도문학(道問學)은 도체의 세밀한 것을 탐구하는 치지(致知) 공부이다.30) 함양을 통해 마음의 본 모습이 바로 서서 사욕에 흔들리지 않게 하고, 치지를 통해 이치를 밝혀 어리석은 판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면 도체의 단서들이 점점 더 모여 엉겨서 결국에는 깨뜨리고자 하여도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함에 이르게 된다. 윤지당은 “순(舜)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탄사를 결어로 제시함으로써 수양에 의해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이를 것을 기약하였다.31)



4. 윤지당 경학의 의의


  윤지당의 「중용경의」는 성리학적인 세계관에 입각점을 둔 가운데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철저히 씹고 소화하여 수미일관(首尾一貫)한 의미맥락을 자기 스스로의 이해와 판단으로 재구성해 낸 창의적인 저술이다. 이론 면에서 어느 학자의 『중용』 주석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도체를 자각하고 체인한 진정한 학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윤지당이 자각한 도체는 추상적․초월적 원리가 아니라 우주에서는 자연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 내면에서는 윤리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역동적인 실체였다. 그는 『중용』 경문에서 제시된 자연과 인간의 최고 덕목인 성(誠)에 대해, “하늘에서는 실리(實理)요, 인간에게서는 실심(實心)”이라고 해석한다.32) 주자 성리학의 이론에 입각하여 엄밀하게 말한다면 자연의 이(理)는 인간의 성(性)에 대응하는 것이며, 이때의 이(理)와 성(性)은 작위(作爲)의 능력, 즉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윤지당은 성(誠)을 이(理)라고 하면서 그것을 바로 인간의 심(心)에 대응시켰다. 심이란 무엇인가? 우주에서는 만물을 낳고 생동케 하는 담일(湛一)한 신명(神明)이며, 인간에서는 일신(一身)을 주재하는 허령(虛靈)한 정신(精神)이다.33) 이기론적 해석에서는 이(理)와 기(氣)의 합일체로서 이(理)의 윤리성과 기(氣)의 역동성을 함께 보지하는 것이다. 윤지당이 자연과 인간의 본원으로 이해한 도체(道體), 즉 성(誠)은 이처럼 윤리성과 역동성을 함께 보유한 생명력 넘치는[活潑潑] 실체였다. 도체가 이미 역동적 실체라면 그것을 따르는 노력은 억지로 힘들여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그것에 내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체와 합일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누구에게 열려 있는 천하 만인에게 공유된 길[達道]이다.  윤지당이 중용의 도를 한 순간도 떠날 수 없는 것, 누구나 그 길을 가 완성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확신하게 된 배경에는 도체에 대한 그러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용경의」라는 저작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윤지당의 철학에서 의미 있게 새겨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윤지당이라고 하는 ‘여성’에게서 유교 정신의 골자를 남김없이 소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임성주, 임정주와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성리학자를 형제로 둔 ‘특별한 조건’이 윤지당의 뛰어난 학문을 가능케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윤지당의 학문적 성취의 배경을 오직 개인적 자질이나 가족 환경의 특수성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그의 성취는 도학의 정신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확산해 온 조선사회 지식인들의 노력의 성과가 신분의 경계와 함께 성(性, gender)의 벽을 넘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간 결실의 하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선사회의 지도 이념이었던 주자 성리학은 자연의 원리를 삶 가운데 체인하여 완성된 인격에 도달한다고 하는 근본 정신에 있어서는 모든 이에게 그 길을 열어 둔 보편적인 철학 사상이었지만, 신분과 성에 관해서는 그 사회적 역할의 구분을 엄격히 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자 성리학이 근본 정신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지배 계층 남성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후자의 특성에 기인한다. 조선 사회의 특권층이었던 사대부가 남성들은 그들의 사회적 지반을 공고히 하는 성리학을 지속적으로 연마하여 그것을 그 사회 유일의 가치관으로 정립시켜 갔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 도달한 성리학적 가치관의 영향력은 신분과 성의 구별을 엄격히 하는 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면 누구나 완성된 인격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는 근본 정신의 확산에도 기여하였다.34)

  윤지당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일원이었지만 그 시대의 정치나 학문의 주역으로는 초대될 수 없는 여성의 몸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에서 말하는 도의 실체를 체인하고 그 실현을 자임한 그의 정신 세계는 어느 남성 도학자보다도 투철하고 진실하였다. 이는 18세기 후반에 사회적으로 공유된 성리학적 가치관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윤지당의 성취가 윤리적인 실천뿐 아니라 정밀한 학문 이론을 개진한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원인은 물론 그의 특별한 환경에 기인한다. 그 시대 조선 사회에 학문과 실천을 겸비한 여성 도학자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매우 이채로운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외적인 돌연변이가 아니며 그 시대 조선 사회를 이끌어간 시대정신의 반영임은 반 세기 후에 강정일당(姜精一堂, 1772-1832)과 같은 또 하나의 여성 도학자가 나와 윤지당을 계승코자 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35)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 任靖周, 「鹿門先生行狀」, 『鹿門集』 附錄


2) 任靖周, 「姊氏允摯堂遺事」, 『雲湖集』 권6 遺事


3) 申光祐, 「允摯堂遺稿跋文」, 『允摯堂遺稿』


4) 任聖周, 「答姊申氏婦」, 『鹿門集』 권10 書


5) 이 장에서 <경문>으로 소개한 부분은 『중용』 본문의 인용이며, <주제>와 <요지>는 임윤지당의 저술 『允摯堂遺稿』의 「中庸」편에 수록된 내용을 요약하여 기술한 것이다.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참조.)


6) 任聖周, 「中庸」, 『鹿門集』 권13 雜著


7) “中庸一書, 皆明道不可離之意.”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7b)


8) “所謂修者, 乃循此性之固有, 因其道之所宜, 而品節其準則也; 非以私智, 强爲法制, 而有所作爲於其間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7a)


9) “程子曰:‘自天命至於敎, 我無加損焉.’ 斯言信矣!”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7b)


10) “其所云者, 猶曰己所也. 卽指思慮未萌, 己所不覩不聞之時也, 屬未發境界, 體之靜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7b)


11) “隱微者, ..... 指其知覺方動處, 己有覩聞而人未覩聞之時也, 屬已發境界, 用之幾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7b)


12) “喜怒哀樂未發之中, 何也? 卽天命之性, 道之體也. 發而皆中節, 何也? 卽循性之道, 性之用也. 學者能常存敬畏, 寂寂惺惺, 立此不偏之體, 而其發於用而應萬事者. 又莫不正正方方, 皆當於理而無過不及之差, 則致中和而天地位矣. 學而至於此, 則天下之能事畢矣. 雖聖人, 無以加焉.”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8a)


13) “仁則中庸之德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8b)


14) “必先燭理明, 然後可以擇而守, 故知居先而仁次之.”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8a)


15) “無勇, 則或未免半塗而廢, 而至道無以凝, 故勇又居三達德之終.”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8a)


16) “蓋道體之妙, 雖莫能測, 其流行發見於天地間者, 則有可言者. ..... 道之體用, 上下昭顯, 無所不在者, 可見而亦可以識, 夫道之不可離也, 所謂費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19b-20a)


17) “不見不聞, 隱也; 體物如在, 則亦費矣.” (朱熹, 『中庸章句』16章)


18) “蓋鬼神者, 二氣之神明, 而與理合一者也. 其點地稍濶, 故有專屬氣分者, 如伯有癘之類是也; 有與理合一者, 卽此章之鬼神是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1b)


19) “鬼神之爲氣爲理, 又可知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2a)


20) “鬼神與費隱, 終不可分.”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2a-22b)


21) “身之本卽又在天, 天只是理而已. 知此理而存諸身謂修身, 故又曰:思修身, 不可以不知天.”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2b)


22) “親之殺․尊賢之等, 皆天理也. 故又當知天.” (朱熹, 『中庸章句』20章)


23) “誠能好學, 而知吾性之與堯舜同, 而利行勉行, 眞積力久, 則可以至於聖人矣.”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3a)


24) “五倫者天下所共由之路, 故曰:達道也. 所以能行此達道者, 惟知仁勇三達德, 知所以知此也, 仁所以守此也, 勇所以强此也. 故曰:所以行之者三也. 然此莫非實理, 不誠無物, 德何自而立乎? 故又曰:所以行之者一也. 一者誠而已.”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3a)


25) “聖賢之別, 雖有此性敎之異, 而成功則一也而已.”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3b)


26) “聖人不生, 萬世將未免駸駸長夜, 而人類之違禽獸不遠. 嗚呼, 大哉! 聖人之恩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4a)


27) “學者苟能因其善端發見之偏, 一一用力而推致之, 以求至乎其極, 則昏可使之明, 微可使之盛, 而有以貫乎全體, 純乎天性, 而聖人之至誠無息, ..... 雖鬼神, 不能窺其際矣.”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4b)


28) “凝字最有味.”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5b)


29) “尊德性者, 涵養本源, 閑邪存誠, 所以存心而極乎道體之大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5b)


30) “道問學者, 讀書窮理, 密察明辨, 所以致知而盡乎道體之細也.”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5b)


31) “有志於學者, 眞能用力於此, 至於欲罷不能, 則道可凝而聖可學矣. 嗟乎! 有爲者, 亦若是. 舜何人哉? 予何人哉?”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6b)


32) “夫誠者, 眞實無妄之謂, 在天曰實理, 在人曰實心.” (任允摯堂, 「中庸」, 『允摯堂遺稿』下篇 經義 25a)


33) “然則所謂心者, 果何也? 卽天地生物之心, 而湛一之神明也. 卽此湛一之神明, 降於人而爲虛靈之體, 載此性而爲一身之主․萬事之本, 所謂道心者也.” (任允摯堂, 「人心道心四端七情說」, 『允摯堂遺稿』上篇 說 38b-39a)


34) 조선 후기 각 고을의 읍지(邑誌), 문집 속의 전기(傳記), 여항(閭巷)의 일을 기록한 저작물들 속에서 중인(中人)이나 상민(常民)들이 유교적 윤리관을 자임하면서 자신들의 인격적 가치를 높이고자 한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35) 姜精一堂의 학문에 관한 연구 성과로 李迎春의「姜精一堂의 生涯와 思想」(2000, 6, 조선시대학보 13집)이 있다.